5.16.2011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미국내의 모든 연방교도소와 주립교도소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 줄로 안다. 나는 물건을 입수하는 사람이다. 항상 그렇게만 되는것은 아니지만, 고급담배나 특히 선호한다면 마리화나가 들은 권련, 자식들의 고등학교 졸업을 축하하기 위한 브랜디 등 그 밖에 거의 모든 것이라도 합리적인 범위에서는 가능하다.


나는 꼭 스무살 났을 때 쇼생크에 왔으며 우리의 행복한 작은 가족중에서 자신의 행위를 실토하는 몇 안되는 놈의 한명이다. 나는 살인을 했다. 세살 연상인 여편네한테 거액의 생명보험을 들어놓고 나는 장인이 결혼선물로 해준 시보레 쿠페의 브레이크에 손을 좀 봤다. 정확히 내 계획대로 진행되었지만 그러나 나는 마을로 들어가던 이웃 여자와 그녀의 어린애를 태우리라는 것은 계획하지는 않았다. 브레이크는 달아나고 차는 가속도가 붙으며 마을 공터 가의 수풀로 돌진해 들어갔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차는 50 마일이상의 속도로 남북전쟁 기념동상의 기단을 들이받고 화염에 휩싸였다고 한다.

물론 내 계획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체포되었다. 나는 한 계절이 지난 다음 이곳에 왔다. 메인주에는 사형제도가 없었다. 하지만 지방검사는 내게 세명의 죽음에 대하여 재판을 진행시켜 종신형의 세배를 언도받게 했다. 그것은 오래도록 내가 가질지도 모를 가석방의 기회를 봉쇄하는 것이었다. 판사는 나의 행위를 가증스럽고 극악무도한 범죄라고 말했으며 사실 그랬지만 한편으론 이젠 과거의 일이기도 하다. 지금도 색바랜 '캐슬락 통신' 지에서 내 사건을 찾아볼 수 있는데 거기에는 히틀러, 무솔리니, 루즈벨트 행정부 의 뉴스 다음에 내 혐의가 다소 우스꽝스럽고 고전적이라고 한 신문 표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재사회화되었는가고 묻는가? 최소한 감옥과 교도소에 관한한 나는 그 말의 뜻조차 모르겠다. 나는 그말이 정치가의 용어라고 생각한다. 그 말은 다른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먼 후일 내가 알게 될지도 모르는 말이리라.-먼 후일이라는 말은 죄수들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도록 스스로를 교육시키는 말이다. 나는 젊고 미남이었으며 마을의 빈민가쪽 출신이었다. 카빈 거리의 고풍스런 저택에사는 예쁘지만 고집세고 밝은 성격은 못되는 편인 여자하나를 나는 임신시켰다. 그녀의 아버지는 자기의 안경공장에 취직해서 열심히 일하는것을 조건으로 결혼에 동의했다. 나는 그의 진짜 속셈이 길들여지지 않아 사람을 무는 애완동물처럼 나를 집에 매어두고 지배하려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증오가 쌓이고 쌓여 이같은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었다.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그같은 일을 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것이 내가 재사회화되었다는 뜻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나에 관한 것이 아니다; 나는 앤디 듀퓨레인 이라는 사나이에 관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앤디에 대하여 말하기전에 나 자신에 관한 몇가지 설명을 해야만 되겠다. 길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나는 이곳 쇼생크 주립교도소에서 빌어먹을 40년 가까이나 물건을 입수하는 일을 해왔다. 고급 담배나 술이 항시 중요한 품목이긴 하지만 이와같은 금지품목만이 아니다. 나는 여기서 복역하는 친구들을 위해 수천개의 목록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것들은 완전히 합법적인 것이지만 처벌받고 있는 장소에서는 쉽사리 구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한 녀석이 있었는데 놈은 미성년자 강간을 포함한 여러가지 죄목으로 들어왔던 놈이었다; 나는 녀석한테 핑크빛 버몬트 대리석 세개를 구해주었는데 놈은 그걸로 멋진 조각품들을 만들어 냈다.-어린아이, 12세 가량의 소년, 턱수염의 젊은이. 이렇게. 그는 거기에 '세 모습의 예수님' 이라고 이름붙였고 그 작품들은 지금 여기 주지사를 지낸 사람의 응접실에 가 있다.

메사츄세츠 북부에서 자랐다면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를 이름이 하나 있다.-로버트 앨런 코트. 그는 1951년에 머천타일 은행을 털다가 현장을 피바다로 만들었었다. 여섯이 죽었는데 둘은 갱이었고 셋은 인질이었다. 또 한명은 고개를 잘못 들어 총알이 눈알에 박히고 만 주립 경찰관이었다. 코트는 동전 수집가였다. 이곳에서 그것을 보유하는 것이 물론 허용되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어머니와 빨래 트럭을 운전하는 중개인의 도움으로 그의 수집품을 입수해 주었다. 나는 그에게 도둑이 득실대는 이런 호텔에서 동전 콜렉션을 소지하려 하다니 제정신이냐고 말했더니 슬쩍 웃으면서 어디에다 그걸 간수할 것인지 알고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안전해. 걱정말라구. 그리고 그가 옳았다. 바비 코트는 1967년 뇌종양으로 죽었지만 그의 콜렉션은 발견되지 않았다.

나는 발렌타인 데이 때면 쵸콜릿을 구해줘왔다; 나는 성 패디 절에 맥도날드 점에서 파는 밀크 쉐이크 세통을 오 맬리라는 미친 아일랜드인에게 구입해줬다; 심지어는 돈을 갹출한 20명에게 '깊은 목구멍' 과 '존슨 양 안의 악마' 두 편의 필름을 빌려 심야상영을 해주기도 했다. 그 작은 탈선행위로 결국 열흘을 독방에서 지내야 했지만 말이다. 그것은 물건을 입수하는 사람이면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위험이다.

나는 학습 참고서나 음란 소설, 혹은 핸드 부저나 잇칭 파우다같은 새로 나온 재밌는 물건들을 구해 주었고 여러차례 장기수들에게 그의 부인이나 애인들의 팬티를 입수해 주기도 했다. 시간이 칼날처럼 질질 끄는 긴긴 밤 동안 이같은 물건들로 수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모든 물건들을 공짜고 입수해 주는 것도 아니고 또 어떤 것들은 값이 비싸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꼭 돈 때문에 이 짓을 하는 것은 아니다; 돈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캐딜락을 살 것도 아니고 2월의 두주일간 자마이카로 날아가 있을 것도 아니데 말이다. 나는 좋은 푸주한은 신선한 고기를 팔 뿐 이라는것과 같은 이유로 이 일을 한다.

나는 좋은 평판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유지하고 싶다. 내가 취급하기를 거부하는 단 두가지 물건은 총과 약물이다. 나는 누군가 자살하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돕고 싶지 않다. 내 마음속에는 평생을 복역케 할 충분한 살인이 있으니까.

그렇다. 나는 꾸준한 나이만 마르쿠스이다. 그래 앤디가 1949년 내게 와서 리타 헤이워드를 구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아무 문제 없다고 말했다.

사실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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