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2011

한국, 사라지기 위해 탄생한 나라

화폐가치와 주가 폭락, 기업의 연쇄도산, 실업 급증, 소비 정체, 대량 해고와 그에

맞선 격렬한 파업... 20세기가 저물어가던 어느 날 이런 소식이 전해져온 것은, 전통적

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던 유럽에서가 아니라, 역동적인 경제성장과 저돌적

인 무역의 상징이었던 한국이었다. 1985년 이후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을 기록

했던 까닭에 '기적의 나라'라고 불리며 모든 개발도상국가가 본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

겼던 한국도 그 거대한 폭풍은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서울에서는 '아시아의 용이

아니라 지렁이일 뿐' 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닥쳐온 위기는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

다.

몇 주 전만 해도 사람들은 흥청망청 돈을 썼으며, 기업은 수십 억 달러에 달하는 돈

을 세계 곳곳에 투자했다고 큰소리를 쳤다. 또한 정부는 북한이 파산 직전의 위기를

맞아 곧 국제무대에서 외톨이가 될 거라고 빈정대기까지 했다.

그렇게 모든 상황은 순탄하기만 한 것 같았다. 그러나 19997년 12월 초순이 되자 상

황은 돌변했고, 마침내 공황이 엄습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경제위기는 '민주주의'라는 말 자체를 금기시했던 군사정권의 억

압 속에서 국가의 발전을 꾀한다는 명분 아래 주당60시간을 노동하고도 그 대가로 쥐꼬리

만한 월급을 받으며 수십 년 동안을 희생해온 한국 국민을 너무나 맥빠지게 만들었다.

한국 국민은 1990년대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그 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

했는데, 그것은 너무도 과도한 소비성향으로 표현되고 말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모

든 것이 무너져내렸다.

일제 식민지 시절과 동족 상잔의 비극 6,25전쟁, 군사독재의 탄압 등 갖가지 역경

을 이겨낸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인은 확실히 적응력과 저항력이 뛰어난 민족이

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이렇게 맞은 위기가 불쾌할 것이다.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나 경제

적인 어려움을 경험하지 못한 채 겨울 스포츠를 즐기고 휴가 때는 외국 여행을 떠나며

고급 옷을 선호하는 그들의 고품격을 일시적으로나마 접어두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본래 무절제한 소비 끝에는 엄격한 고행이 따르는 법이다.

누구를 위하여 변화하는가

신기하게도 국제 언론은 한국의 경제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들은 한국

이 과거에 이루었던 눈부신 경제성장을 찬양하거나, 현재 한국이 처한 어려움만을 염려

할 뿐이다. 그들은 한국을 도산 직전에 처해 있는 하나의 커다란 공장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마치 4,400만 명이나 되는 한국 국민이 투표권을 가진 시민이기 이전에 견습 노

동자에 불과하다는 듯이 말이다. 1950년대에는 방글라데시보다도 더 가난했던 나라를 5

0여 년이 흐른 지금, 세계에서 열 한 번째 가는 경제대국으로 만든 눈부신 경제성장

이 사회나 가족관계, 소비성향, 종교적 관습 등과는 아무 관계없이 이루어졌으며, 결국

한국에는 정치적인 삶이나 이면적인 토론, 의견의 차이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

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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