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7.2011

손을 뻗어 누군가를 만져라

좀 오래전에 홀마크(Hallmark) 카드 회사의 연구 책임자가 나에게 자기 회사의 제일 큰 경쟁자가 에이티앤티(AT&T)였다고 설명하였다. "손을 뻗어 누군가를 만져라"라는 말은 목소리를 통한 감정 전달을 뜻한다. 음성 채널은 신호뿐만 아니라 이해, 숙고, 보상, 용서의 기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다른 신호를 함께 전달한다. 어떤 사람의 목소리는 정직하게 '들리고,' 어떤 주장은 수상하게 '들리며,' 어떤 것은 그렇게 '들리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음향에는 감정에 관한 정보가 묻어 있다.

어떤 사람을 만지기 위해 손을 뻗는 것과 똑같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기계에 전달하기 위해 목소리를 사용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컴퓨터에게 마치 훈련 담당 하사관처럼 대할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이성적인 목소리로 말할 것이다. 말과 위임은 단단히 밀착되어 있다. 앞으로 일곱 난쟁이에게 명령을 내리게 될까?

가능한 이야기이다. 20년 후에는 책상 위를 걸어다니는 8인치 높이의 홀로그래픽 조교 또는 비서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무리한 일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음성이 당신과 당신의 인터페이스 대행자(interface agents) 간의 주요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되리라는 점이다.


하이터치 컴퓨팅

그래픽 입력의 강력한 대안은 사람의 손가락이다.


은행의 자동 현금지급기나 정보 키오스크(kiosks)는 터치스크린(touch-sensi-

tive displays)을 아주 성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용 컴퓨터에서는 터치스크린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인간의 손가락은 따로 챙겨둘 필요가 없는 포인팅(pointing) 도구일 뿐만 아니라 그 수가 열 개나 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왜 손가락을 사용하지 않는지 모를 일이다. 손가락을 사용하면 우아하게 타이핑에서 포인팅으로, 수평에서 수직으로 작업을 전환할 수 있다. 그런데도 손가락은 인기를 끌지 못한다. 보통 세 가지 이유를 드는데 나는 이 가운데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손가락은 어떤 것을 가리킬 때 그것을 보이지 않게 덮어버린다. 사실이다. 그러나 종이와 연필을 사용해도 똑같다. 사람들은 여전히 손으로 글을 쓰고 있으며, 인쇄물에서 어떤 것을 확인하는 데도 손가락을 쓴다.

손가락은 해상도가 낮다. 틀렸다. 손가락은 뭉뚝하지만 대단한 해상도를 갖고 있다. 손가락으로 디스플레이의 표면을 만진 이후에 두번째 단계로 진입하여 손가락을 부드럽게 움직여서 원하는 위치에 아주 정확하게 커서를 위치시킬 수 있다.

손가락은 스크린을 더럽힌다. 하지만 스크린을 깨끗하게 만들기도 한다! 깨끗한 손가락은 스크린을 깨끗하게 만들고 더러운 손가락은 더럽게 만든다고 보아야 한다.

손가락을 사용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우리가 아직 손가락 주변을 감지하는 그럴듯한 기술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손가락이 디스플레이에 직접 닿지는 않지만 거의 닿을 듯 접근하는 경우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손가락이 닿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만을 구별하는 수준이라면 수많은 어플리케이션이 아주 멍청한 기능만 하게 된다. 손가락이 1/4 인치 거리 안에 들어오면 커서가 나타나고 스크린에 닿으면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과 동일한 작용을 해야 한다.

손가락을 사용하는 인터페이스의 최종 모습은 지문을 인식하여 마치 스노 타이어에 새겨진 골처럼 손가락과 스크린 유리 사이의 마찰력을 가중시키는 수준에 이를 것이다. 이러한 접착력은 스크린을 실제로 미는 효과를 가져와서 스크린 판(plane)에 힘을 전달한다.

20년 전에 우리가 엠아이티에서 만들었던 장비가 한 가지가 있다. 그 장비는 직접 움직이지 않고도 손가락을 갖다대고 힘을 주면 닿는 힘의 세기에 따라 물체를 움직이게 할 수도 있고 끌거나 밀 수도 있고 회전시킬 수도 있었다. 이 장비로 데몬스트레이션이 진행되었다. 화면 위에는 손가락 두세 개로 잡을 수 있을 만한 크기의 회전 손잡이(knobs)가 나타났다. 손가락을 디스플레이 위에 얹고 눌러주면 회전 손잡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조절 손잡이는 돌아가면서 딸깍딸깍하는 소리까지 냈기 때문에 현실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어린이 게임에서부터 비행기 조종석을 단순화시키는 데까지 널리 사용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이었다.

마우스와 사람

미디어랩의 닐 거센펠트(Neil Gershenfeld)는 몇 분 정도면 사용법을 배울 수 있는 30달러짜리 마우스와 평생을 배워도 다 배우지 못하는 3만 달러짜리 첼로 활을 비교한 적이 있다. 그는 첼로의 16가지 연주 기술과 마우스의 클릭(click), 더블 클릭(double-click), 드래그(drag)를 대비시켰다. 첼로의 활은 대연주가를 위한 것이고 마우스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마우스는 그래픽을 입력하는, 간단하지만 귀찮은 매체(medium)이다. 마우스는 네 가지 단계를 요구한다. 1) 마우스를 손으로 더듬어 찾는다. 2) 커서(cursor)를 찾기 위해 마우스를 흔든다. 3) 원하는 곳으로 커서를 옮긴다. 4) 마우스 버튼을 한 번, 혹은 두 번 누른다. 혁신적인 디자인을 채택한 애플 파워북은 이 단계를 최소한 3단계로 축소하였다. 파워북은 엄지손가락으로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정지 마우스'(dead mouse, 최근에는 트랙패드 track pad)를 장착하여 타이핑이 중단되는 경우를 최소화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데는 마우스와 트랙볼도 별볼일 없다. 트랙볼로 사인을 한번 해보라. 그런 목적이라면 데이터 타블렛(data tablet)이나 볼펜처럼 생긴 펜마우스가 훨씬 더 좋은 해결책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한 데이터 타블렛을 갖추고 있는 컴퓨터는 많지 않다. 타블렛과 키보드를 어디에 놓을지를 결정하는 일은 우리를 정신분열증으로 몰고간다. 왜냐하면 타블렛과 키보드가 서로 디스플레이 바로 앞, 혹은 밑에 놓여지려고 경쟁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종종 디스플레이 밑에 키보드를 설치하는 것으로 결판나는데, 그 이유는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이 타이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데이터 타블렛이 축을 벗어나거나 마우스가 화면 밖으로 벗어나는 일이 많아서 우리는 부자연스럽지만 손과 눈이 서로 협동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손으로는 그림을 그리거나 점을 찍으면서 동시에 눈으로는 다른 곳을 본다. 말하자면 더듬어 그리는 것이다.

1964년에 더글러스 잉글바트(Douglas Englebart)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가리키려고(pointing) 마우스를 발명하였다. 그의 발명은 그 자리에서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오늘날 우리는 어디에서나 마우스를 사용하고 있다. 국립예술기금(National Endowment of the Arts) 이사장인 제인 알렉산더(Jane Alexander)는 오직 남자들만이 그것을 마우스(속어로는 계집이라는 뜻도 있다)라고 불러왔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이반 서더랜드(Ivan Sutherland)는 스크린에 직접 그리는 광학펜 개념을 완성하였다(1950년대에 세이지 SAGE 방어 시스템은 약간 조잡한 광학펜을 사용하였다). 그것은 다섯 개의 점으로 만들어진 십자 모양 커서를 추적했다. 그림을 끝마치려면 손목을 재빨리 털고 의도적으로 커서 추적을 그만두어야 했다. 하나의 선을 끝내는 방법치고 깜찍하기는 하지만 정교한 방법은 아니었다.

광학펜은 사실상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크린까지 손을 올리는 일은 별도로 치더라도(손에서 피가 빠져나가 오랫동안 지속하기가 힘들다) 2온스짜리 펜을 움직이려면 팔과 손에 극심한 피로가 온다. 어떤 경우에는 광학펜의 두께가 2분의 1인치인 경우도 있었는데 그런 때는 마치 시가로 엽서를 쓰는 것처럼 느껴졌다.

데이터 타블렛은 특히 그림을 그리는 데 아주 편하다. 약간의 노력을 들이면 미술가의 붓이 갖는 풍부함과 감촉을 지닌 철필을 만들 수 있다. 오늘날에는 단단한 표면에 쓰는 (느낌이) 볼펜 같은 형태로 근접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책상 공간이 당신과 디스플레이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오도록 만든다. 우리의 책상은 이미 너무 어질러 있기 때문에 데이터 타블렛이 널리 보급되기 위해서는 가구 제조업자가 그것을 책상 안에 설치하거나 다른 기구 없이 오직 책상 자체만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