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7.2011

손을 뻗어 누군가를 만져라

좀 오래전에 홀마크(Hallmark) 카드 회사의 연구 책임자가 나에게 자기 회사의 제일 큰 경쟁자가 에이티앤티(AT&T)였다고 설명하였다. "손을 뻗어 누군가를 만져라"라는 말은 목소리를 통한 감정 전달을 뜻한다. 음성 채널은 신호뿐만 아니라 이해, 숙고, 보상, 용서의 기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다른 신호를 함께 전달한다. 어떤 사람의 목소리는 정직하게 '들리고,' 어떤 주장은 수상하게 '들리며,' 어떤 것은 그렇게 '들리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음향에는 감정에 관한 정보가 묻어 있다.

어떤 사람을 만지기 위해 손을 뻗는 것과 똑같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기계에 전달하기 위해 목소리를 사용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컴퓨터에게 마치 훈련 담당 하사관처럼 대할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이성적인 목소리로 말할 것이다. 말과 위임은 단단히 밀착되어 있다. 앞으로 일곱 난쟁이에게 명령을 내리게 될까?

가능한 이야기이다. 20년 후에는 책상 위를 걸어다니는 8인치 높이의 홀로그래픽 조교 또는 비서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무리한 일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음성이 당신과 당신의 인터페이스 대행자(interface agents) 간의 주요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되리라는 점이다.


하이터치 컴퓨팅

그래픽 입력의 강력한 대안은 사람의 손가락이다.


은행의 자동 현금지급기나 정보 키오스크(kiosks)는 터치스크린(touch-sensi-

tive displays)을 아주 성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용 컴퓨터에서는 터치스크린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인간의 손가락은 따로 챙겨둘 필요가 없는 포인팅(pointing) 도구일 뿐만 아니라 그 수가 열 개나 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왜 손가락을 사용하지 않는지 모를 일이다. 손가락을 사용하면 우아하게 타이핑에서 포인팅으로, 수평에서 수직으로 작업을 전환할 수 있다. 그런데도 손가락은 인기를 끌지 못한다. 보통 세 가지 이유를 드는데 나는 이 가운데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손가락은 어떤 것을 가리킬 때 그것을 보이지 않게 덮어버린다. 사실이다. 그러나 종이와 연필을 사용해도 똑같다. 사람들은 여전히 손으로 글을 쓰고 있으며, 인쇄물에서 어떤 것을 확인하는 데도 손가락을 쓴다.

손가락은 해상도가 낮다. 틀렸다. 손가락은 뭉뚝하지만 대단한 해상도를 갖고 있다. 손가락으로 디스플레이의 표면을 만진 이후에 두번째 단계로 진입하여 손가락을 부드럽게 움직여서 원하는 위치에 아주 정확하게 커서를 위치시킬 수 있다.

손가락은 스크린을 더럽힌다. 하지만 스크린을 깨끗하게 만들기도 한다! 깨끗한 손가락은 스크린을 깨끗하게 만들고 더러운 손가락은 더럽게 만든다고 보아야 한다.

손가락을 사용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우리가 아직 손가락 주변을 감지하는 그럴듯한 기술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손가락이 디스플레이에 직접 닿지는 않지만 거의 닿을 듯 접근하는 경우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손가락이 닿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만을 구별하는 수준이라면 수많은 어플리케이션이 아주 멍청한 기능만 하게 된다. 손가락이 1/4 인치 거리 안에 들어오면 커서가 나타나고 스크린에 닿으면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과 동일한 작용을 해야 한다.

손가락을 사용하는 인터페이스의 최종 모습은 지문을 인식하여 마치 스노 타이어에 새겨진 골처럼 손가락과 스크린 유리 사이의 마찰력을 가중시키는 수준에 이를 것이다. 이러한 접착력은 스크린을 실제로 미는 효과를 가져와서 스크린 판(plane)에 힘을 전달한다.

20년 전에 우리가 엠아이티에서 만들었던 장비가 한 가지가 있다. 그 장비는 직접 움직이지 않고도 손가락을 갖다대고 힘을 주면 닿는 힘의 세기에 따라 물체를 움직이게 할 수도 있고 끌거나 밀 수도 있고 회전시킬 수도 있었다. 이 장비로 데몬스트레이션이 진행되었다. 화면 위에는 손가락 두세 개로 잡을 수 있을 만한 크기의 회전 손잡이(knobs)가 나타났다. 손가락을 디스플레이 위에 얹고 눌러주면 회전 손잡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조절 손잡이는 돌아가면서 딸깍딸깍하는 소리까지 냈기 때문에 현실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어린이 게임에서부터 비행기 조종석을 단순화시키는 데까지 널리 사용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이었다.

마우스와 사람

미디어랩의 닐 거센펠트(Neil Gershenfeld)는 몇 분 정도면 사용법을 배울 수 있는 30달러짜리 마우스와 평생을 배워도 다 배우지 못하는 3만 달러짜리 첼로 활을 비교한 적이 있다. 그는 첼로의 16가지 연주 기술과 마우스의 클릭(click), 더블 클릭(double-click), 드래그(drag)를 대비시켰다. 첼로의 활은 대연주가를 위한 것이고 마우스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마우스는 그래픽을 입력하는, 간단하지만 귀찮은 매체(medium)이다. 마우스는 네 가지 단계를 요구한다. 1) 마우스를 손으로 더듬어 찾는다. 2) 커서(cursor)를 찾기 위해 마우스를 흔든다. 3) 원하는 곳으로 커서를 옮긴다. 4) 마우스 버튼을 한 번, 혹은 두 번 누른다. 혁신적인 디자인을 채택한 애플 파워북은 이 단계를 최소한 3단계로 축소하였다. 파워북은 엄지손가락으로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정지 마우스'(dead mouse, 최근에는 트랙패드 track pad)를 장착하여 타이핑이 중단되는 경우를 최소화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데는 마우스와 트랙볼도 별볼일 없다. 트랙볼로 사인을 한번 해보라. 그런 목적이라면 데이터 타블렛(data tablet)이나 볼펜처럼 생긴 펜마우스가 훨씬 더 좋은 해결책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한 데이터 타블렛을 갖추고 있는 컴퓨터는 많지 않다. 타블렛과 키보드를 어디에 놓을지를 결정하는 일은 우리를 정신분열증으로 몰고간다. 왜냐하면 타블렛과 키보드가 서로 디스플레이 바로 앞, 혹은 밑에 놓여지려고 경쟁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종종 디스플레이 밑에 키보드를 설치하는 것으로 결판나는데, 그 이유는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이 타이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데이터 타블렛이 축을 벗어나거나 마우스가 화면 밖으로 벗어나는 일이 많아서 우리는 부자연스럽지만 손과 눈이 서로 협동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손으로는 그림을 그리거나 점을 찍으면서 동시에 눈으로는 다른 곳을 본다. 말하자면 더듬어 그리는 것이다.

1964년에 더글러스 잉글바트(Douglas Englebart)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가리키려고(pointing) 마우스를 발명하였다. 그의 발명은 그 자리에서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오늘날 우리는 어디에서나 마우스를 사용하고 있다. 국립예술기금(National Endowment of the Arts) 이사장인 제인 알렉산더(Jane Alexander)는 오직 남자들만이 그것을 마우스(속어로는 계집이라는 뜻도 있다)라고 불러왔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이반 서더랜드(Ivan Sutherland)는 스크린에 직접 그리는 광학펜 개념을 완성하였다(1950년대에 세이지 SAGE 방어 시스템은 약간 조잡한 광학펜을 사용하였다). 그것은 다섯 개의 점으로 만들어진 십자 모양 커서를 추적했다. 그림을 끝마치려면 손목을 재빨리 털고 의도적으로 커서 추적을 그만두어야 했다. 하나의 선을 끝내는 방법치고 깜찍하기는 하지만 정교한 방법은 아니었다.

광학펜은 사실상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크린까지 손을 올리는 일은 별도로 치더라도(손에서 피가 빠져나가 오랫동안 지속하기가 힘들다) 2온스짜리 펜을 움직이려면 팔과 손에 극심한 피로가 온다. 어떤 경우에는 광학펜의 두께가 2분의 1인치인 경우도 있었는데 그런 때는 마치 시가로 엽서를 쓰는 것처럼 느껴졌다.

데이터 타블렛은 특히 그림을 그리는 데 아주 편하다. 약간의 노력을 들이면 미술가의 붓이 갖는 풍부함과 감촉을 지닌 철필을 만들 수 있다. 오늘날에는 단단한 표면에 쓰는 (느낌이) 볼펜 같은 형태로 근접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책상 공간이 당신과 디스플레이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오도록 만든다. 우리의 책상은 이미 너무 어질러 있기 때문에 데이터 타블렛이 널리 보급되기 위해서는 가구 제조업자가 그것을 책상 안에 설치하거나 다른 기구 없이 오직 책상 자체만 있어야 한다.


윈도우의 모양

참신한 이름짓기가 소비자에게는 잘못된 인상을 심어주지만 시장에서는 큰 돈을 버는 일이 종종 있다. 아이비엠이 개인용 컴퓨터를 피시(PC)라고 부르기로 결정한 것은 천재적인 위업이었다. 애플사가 4년이나 먼저 시장에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피시라는 이름은 개인용 컴퓨터의 대명사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차세대 운영체제의 이름을 윈도우라고 이름지음으로써, 애플이 윈도우 분야에서 5년이나 앞서 있었고 수많은 워크스테이션 제조업자가 이미 광범하게 윈도우를 사용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용어를 영원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윈도우는 컴퓨터 스크린이 작기 때문에 필요하다. 윈도우를 쓰면 상대적으로 협소한 작업 공간에서 서로 다른 처리과정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이 책 전체는 출판사가 만든 부분이나 출판사를 위한 부분을 제외하면 종이 없이 9인치짜리 스크린으로 집필되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윈도우 사용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어떻게 하는가를 배울 필요 없이 그냥 하면 된다.

윈도우는 텔레비전의 미래에 대한 은유로서도 흥미롭다. 특히 미국인들은 텔레비전 영상이 스크린을 꽉 채워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모든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동일한 직사각형 형태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스크린을 꽉 채우는 데는 비용이 든다.

실제로 1950년대 초기의 영화 산업은 초창기 텔레비전 보급을 저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와이드 스크린(시네라마, 슈퍼 파나비전, 슈퍼 테크니라마, 35밀리 파나비전 그리고 아직까지 사용되고 있는 시네마스코프 등)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현재 텔레비전에서 사용되는 4대3 비율은 2차대전 이전에 만들어진 영화의 가로 세로 비율을 본뜬 것이다. 이것은 시네마스코프, 곧 지난 40년 동안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영화 형태에는 맞지 않는다.

유럽의 방송사들은 이른바 레터 박스(letter boxing)를 사용하여 이러한 화면 비율의 차이를 해결하였다. 그들은 텔레비전 스크린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검게 만들어 나머지 사용 영역이 정확한 화면 비율을 갖도록 하였다. 몇 개의 픽셀을 희생함으로써 시청자는 각 프레임의 모습이 충실하게 재현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나는 레터 박스의 효과를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없을 경우 영상의 상하 수평선은 텔레비전 수상기의 둥그런 플라스틱 테두리 때문에 두리뭉실해질 것이다.

미국에서는 레터 박스 방식을 거의 쓰지 않는다. 대신에 필름을 비디오로 옮길 때 와이드 화면 영화를 가로 세로 4대3의 직사각형 틀에 짜넣는 '팬 스캔'(pan-and-scan) 방식을 사용한다. 단순히 그림을 짜넣는 것은 아니다(제목과 크레디트 credits 자막이 뜰 때는 그렇지만). 필름이 기계(플라잉 스포트 스캐너 flying spot scanner)를 거치는 동안 그 위에 덧씌워진 4대3 윈도우를 사람이 수동으로 움직여 각 장면에서 가장 적절한 부분을 잡아낸다.

우디 알렌(Woody Allen) 같은 감독은 이런 작업을 용납하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감독은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이러한 팬 스캔이 대책 없이 실패한 예를 영화 [졸업](The Graduate)에서 볼 수 있다. 더스틴 호프만(Dustin Hoffman)과 앤 밴크로프트(Anne Bancroft)가 화면 양 끝에서 각자 옷을 벗는 장면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비디오 한 프레임에 그들 둘을 동시에 집어넣을 수는 없었다.

일본과 유럽에서는 새로운 와이드 화면비 16대9를 대세로 몰아가고 있고, 미국의 고선명 텔레비전 경쟁자들은 조심스럽게 이를 따르고 있다. 16대9 화면 비율은 실제로 4대3보다 더 나쁜 결과를 낳는다. 왜냐하면 4대3 비율로 만들어진 기존의 비디오 자료를 보기 위해 16대9 스크린의 양쪽 가장자리에 이른바 검정 커튼을 치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커튼은 시각적으로 레터 박스에 못미칠 뿐만 아니라 필요할 때 팬 스캔을 할 수도 없다.

화면 비율은 가변적이어야 한다. 텔레비전이 충분한 픽셀을 갖는다면 윈도우 스타일은 굉장한 의미를 만들어낼 것이다. 10피트 영화 스크린의 경험과 18인치 텔레비전 화면의 경험이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미래의 어느 날, 바닥에서 천정에 이르는 고선명 디스플레이가 등장할 경우 당신은 텔레비전 이미지를―작은 스크린 주위의 프레임같이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방안에 화분들을 위치시키듯이―스크린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 전체 벽에다 말이다.


픽셀의 위력

비트가 정보의 최소 단위인 것처럼 픽셀은 그래픽의 분자이다(픽셀은 보통 한 개 이상의 비트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원자 수준에 놓을 수는 없다). 컴퓨터 그래픽을 하는 사람들은 그림(picture)과 요소(element)라는 단어의 앞 글자를 따서 픽셀(pixel)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번호가 적혀 있지 않은 크로스워드 퍼즐처럼 픽셀의 행과 열을 모아놓은 것이 이미지라고 생각해 보라. 어떤 흑백 이미지를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행렬을 사용할지 결정할 수 있다. 행렬이 많고 면적이 좁을수록 입자(grain)는 섬세해지고 더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마음속으로 사진 위에 이 격자 눈금(grid)을 얹어놓고 각 부위를 명암으로 채워보라. 완성된 크로스워드 퍼즐은 수치들의 배열(array)이 될 것이다.

컬러일 경우에는 세 개의 픽셀이 필요한데 각각의 픽셀은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혹은 명도(intensity), 색상(hue), 채도(saturation)를 맡는다. 우리는 학생 시절에 빨강, 노랑, 파랑이 삼원색이라고 배웠지만 여기서는 그 삼원색이 아니다. 텔레비전에서와 같은 가산적 삼원색은 빨강, 초록, 파랑이다. 인쇄에서와 같은 감산적 삼원색은 마젠타(magenta), 시안(cyan), 노랑색이다. 빨강, 노랑, 파랑이 아니다(아이들에게 가르칠 때 마젠타라는 단어가 너무 길어서 이 용어를 쓰지 않는다고 들었다. 많은 어른들도 시안이란 말을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동작의 경우―영화의 프레임처럼―시간이 샘플링된다. 각 샘플은 하나의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들을 한데 모아 충분히 빠른 속도로 연속해서 돌려보면 유연하게 움직이는 것 같은 시각 효과가 만들어진다. 역동적인 그래픽이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비디오가 아주 작은 화면에 디스플레이되는 이유는, 메모리로부터 충분히 많은 비트를 받아서 픽셀을 충분히 빠른 속도로 스크린 위로 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깜빡임이 없는 유연한 동작을 만들려면 초당 60에서 90프레임이 필요하다. 앞으로 누군가가 속도를 향상시킨 새로운 제품을 만들거나 신기술을 개발해낼 것이다.

픽셀의 진정한 힘은 그것이 갖고 있는 분자적 성격에서 나온다. 픽셀은 텍스트에서 선, 사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구성할 수 있다. 비트가 비트인 것과 마찬가지로 픽셀은 픽셀이다. 충분한 픽셀과 한 픽셀당 충분한 비트(회색톤이나 컬러)를 갖추면 현대의 개인용 컴퓨터와 워크스테이션에서 훌륭한 디스플레이 화질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질이 좋아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질이 떨어지는 것 또한 격자 구조의 제한 때문에 생긴다.

픽셀은 많은 메모리를 요구한다. 더 많은 픽셀과 픽셀당 더 많은 비트를 사용할수록 그것을 저장하는 데 더 많은 메모리가 필요하다. 컬러로 가로 1,000 세로 1,000 픽셀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스크린에는 2,400만 비트의 메모리가 필요하다. 1961년 내가 엠아이티의 신입생이었을 때 메모리에 드는 비용은 1비트당 1달러였다. 지금은 2,400만 비트의 가격이 60달러 정도이다. 이제는 픽셀 지향 컴퓨터 그래픽이 메모리를 많이 잡아먹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5년 전만 해도 사정이 달랐다. 사람들은 픽셀을 훨씬 적게 쓰고 픽셀당 비트수도 대폭 줄임으로써 비용을 절감했다. 사실상 초기의 레스터 스캔 디스플레이는 한 픽셀당 오직 1비트만 사용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아주 특수한 문제점, 곧 그래픽이 톱날처럼 들쭉날쭉해지는 윤곽 왜곡 현상(jaggies)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그래픽 빅뱅

엠아이티의 이반 서더랜드(Ivan Sutherland)는 대화형(interactive) 컴퓨터 그래픽의 세계에 관해 연구했는데, 1963년에 발표된 그의 박사 논문 [스케치패드](Sketchpad)는 전세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스케치패드는 사용자가 '광학펜'으로 컴퓨터 스크린과 직접 상호작용할 수 있는 실시간 선그리기 시스템(real-time line-drawing system)이었다. 그가 이룬 성과는 너무나 방대해서 우리 가운데 몇 명이 달려들어도 모든 내용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데 10년은 족히 걸릴 만했다. 스케치패드는 여러 가지 새로운 개념을 소개하였다. 그 가운데 몇 개를 꼽아보면 동적 그래픽(dynamic graphics), 비쥬얼 시뮬레이션(visual simula-


tion), 압축 해상법(constraint resolution), 펜 추적(pen tracking), 좌표계(virtually in-

finite coordinate system) 등이 있다. 스케치패드는 컴퓨터 그래픽의 빅 뱅(big bang)이었다.

그후 10년 동안 연구자들은 컴퓨터 그래픽의 실시간 상호작용에 대해 흥미를 잃는 듯했다. 대신 오프라인(off-line)으로 사실적인 이미지를 합성하는데 그들의 창조적인 에너지를 쏟았다. 서더랜드 자신은 컴퓨터 이미지를 실제 사진처럼 정교하게 만드는 비쥬얼 실재(visual verisimilitude) 문제로 약간 우회하였다. 그림자(shadows), 색조(shading), 반사(reflections), 굴절(refractions), 잠복 표면(hidden surfaces) 등이 그의 연구 초점이었다. 아름답게 그려진 장기 말과 찻주전자가 스케치패드 다음 시대의 우상이 되었다.

이 시기에 나는 그래픽 아이디어를 쉽게 표현하는 일이 그래픽을 합성 사진처럼 그려내는(to render) 기계의 성능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훌륭한 인간-컴퓨터 인터페이스 디자인은 복잡한 묘사에서 볼 수 있는 완벽성과 일관성보다는 어떤 디자인 과정에서나 초기 단계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곧 컴퓨터에 대한 불완전한 사고와 애매한 사고를 지니고 있었다. 손으로 그린 스케치를 온라인, 실시간(real-time)으로 추적하는 일은 나에게 훌륭한 연구 과제를 제공해 주었다. 이 작업을 통해 나는 컴퓨터 그래픽이 동적이고 상호작용적이며 표현에 강한 매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 작업의 핵심 개념은 한 사람의 그래픽 '의도'(intent)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사용자가 완만한 곡선을 천천히 그었을 때 컴퓨터는 그의 의도를 안다. 그러나 똑같은 형태의 선이라도 빠르게 그어진 것이라면 사용자는 원래 직선을 그으려 했을 것이다.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 놓고 본다면 두 개의 곡선은 거의 똑같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의도는 완전히 다르다. 스케치하는 행위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므로 컴퓨터는 각 사용자의 스타일을 배워야 한다. 30년 후, 애플이 만든 개인 휴대용 통신 단말기인 뉴턴(Newton)에 의해 이와 같은 개념이 재현되었다. 성능에 약간의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뉴턴은 사용자의 필체를 파악해서 손으로 쓴 글씨를 인식할 수 있었다.

스케치한 모양이나 대상을 인식하는 것을 보고 컴퓨터 그래픽에 관한 나의 생각은 선에서 점으로 바뀌었다. 스케치에서는 선 사이에 있거나 선으로 보완된 부분이, 그 그림이 무엇을 그린 것인가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같은 기간에 제록스의 팔로알토 연구소(PARC)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에 대한 형태지향적(shape-oriented) 접근방식을 창안해냈다. 이 접근 방법에서는 무수한 점의 집합으로 이미지를 저장하고 보여줌으로써 무정형의 영역을 다루었다. 그 당시 몇 명의 동료가 미래의 대화형 컴퓨터 그래픽은 스케치패드와 같이 선을 긋는 장치가 아니라 텔레비전과 유사한 래스터 스캔(raster scan) 시스템이 되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시스템은 브라운관(CRT)의 빔을 엑스(X), 와이(Y)축에다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컴퓨터 메모리에 저장된 이미지를 디스플레이 장치 위에 그려내는데, 이 과정은 마치 그림을 새겨넣는 것과 흡사하다. 한때 선으로 인식되었던 컴퓨터 그래픽의 기본적 요소는 이제 픽셀로 발전하였다.

오디세이

1968년에 아서 클라크(Arthur C. Clarke)는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과 함께 [2001:우주 오디세이](2001:A Space Odyssey)로 오스카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이상하게도 영화가 책보다 먼저 나왔다. 클라크는 영화가 크게 성공한 후 그의 원고를 수정하였다. 그는 이야기 줄거리를 영화로 모의 실험한 다음, 그의 개념을 다듬을 수 있었다. 책을 출판하기 전에 그의 아이디어를 먼저 보고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컴퓨터 할(HAL)은 미래의 인간과 컴퓨터 간의 인터페이스를 훌륭하게(치명적이기는 하지만) 보여주었다. 할(HAL)은 완벽하게 말(이해와 발성)을 구사하고, 뛰어난 시력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지능의 최종 단계인 유머까지 지니고 있었다.

그후 거의 사반세기가 지나서 또 하나의 멋진 인터페이스, 지식항해자(The Knowledge Navigator)가 출현하였다. 이 비디오 테이프와 비디오 시제품이라 불리는 극장용 작품은 당시 애플사의 회장이었던 존 스컬리(John Sculley)에게 맡겨졌다. 스컬리는 자신이 쓴 책도 오디세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었으며, 지식항해자의 아이디어와 함께 끝나고 있었는데, 이 아이디어도 후일 비디오로 제작되었다. 그는 마우스와 메뉴 방식을 뛰어넘는 미래의 인터페이스를 그려 보여주고자 했다. 그는 매우 훌륭한 일을 해냈다.

{지식항해자}를 읽어보면 소탈하게 보이는 교수의 책상 위에는 책같이 생긴 평범한 장비가 펼쳐져 있다. 디스플레이 한쪽 구석에는 나비 넥타이를 맨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기계 인간이다. 교수가 이 대행자에게 강의를 준비하도록 지시하고, 몇 가지 일을 시키고 다른 일에 대해 주의를 준다. 기계인간은 사람처럼 보고, 듣고, 지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할과 지식항해자는 둘 다 물리적인 인터페이스가 필요 없을 정도로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여기에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비밀이 숨어 있다. 인터페이스 자체를 없애버려라. 우리는 모르는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의 생김새, 말투, 몸짓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처음에는 목소리의 톤이나 얼굴의 표정언어가 크게 영향을 미치지만, 곧 내용이 대화를 지배하게 된다. 훌륭한 컴퓨터 인터페이스도 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 인터페이스 디자인이란 계기판이 아니라 인간을 디자인하는 문제로 봐야 한다.

한편 대부분의 인터페이스 설계자들은 똑똑한 사람이 멍청한 기계를 좀더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인간의 신체가 감각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관한 연구와, 도구를 사용하여 일하는 효과에 관한 연구가 미국과 유럽의 인간공학 분야(감수자 주:인간공학을 미국에서는 hu-

man factors, 유럽에서는 ergonomics라고 부르고 있다)를 선도하고 있다.

전화 수화기는 아마 지구상에서 새로운 디자인이 가장 많이(지나칠 정도로) 시도된 물건일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상태로 남아 있다. 무선 전화기의 불안정한 인터페이스 때문에 브이시알이 껌뻑거릴 경우가 있다. 뱅 앤드 올프슨(Bang & Olufsen) 전화기는 전화기라기보다는 차라리 조각에 가깝다. 이것은 검정색 구식 다이얼 전화기보다 더 사용하기 힘들다.

더 나쁜 것은 전화 디자인이 하도 많이 '등장해서' 거의 죽을 지경이라는 점이다. 번호 저장, 재발신, 신용카드 관리, 발신 대기, 발신, 자동응답, 번호검색 등을 얇은 몸체 안에 우겨넣어서 손바닥만한 기계의 사용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나는 이런 기능을 사용하고 싶지 않음은 물론이고 전화기 다이얼조차 돌리고 싶지 않다. 우리 가운데 전화기 다이얼을 돌리고 싶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전화 디자이너들은 왜 모를까? 우리는 전화를 통하여 사람들과 접촉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그 일을 대행시킬 수 있다. 전화 문제의 해결책은 수화기 디자인이 아니라, 당신의 주머니에 들어갈 만한 로봇 비서를 디자인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끌어당기기(pulling) 와 밀어내기(pushing)

바이아콤, 뉴스 코퍼레이션(News Corporation) 그리고 이 책의 출판사 같은 거대 미디어 기업은 상품을 유통시킴으로써 정보와 오락 내용의 가치를 배가시킨다. 내가 앞에서 말한 대로 아톰의 분배는 비트보다 훨씬 더 복잡하며 수많은 회사의 힘을 필요로 한다. 이와 반대로 비트 운반은 훨씬 간단하다. 원칙적으로 비트 운반은 이들 거대 회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거의 그럴 것이다.

나는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를 통해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 리포터인 존 마코프(John Markoff)의 글을 처음 접하였다. 그러나 마코프가 쓴 새로운 이야기를 자동으로 수집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그것을 나의 개인 신문(personalized newspaper)이나 추천 독서 파일(suggested-reading file)에 떨구면 그의 글을 수집하고 읽는 일이 아주 수월해질 것이다. 아마 그렇게 되면 나는 그의 이야기 한 개당 '2센트' 정도를 마코프에게 지불하게 될 것이다.

1995년에 인터넷을 사용하는 전체 사용자 가운데 2/100가 이런 서비스에 가입하고 존이 일년에 100편 정도의 글을 쓴다고 가정하면 (그는 실제로 일년에 120∼140편 정도의 글을 쓴다) 그는 일년에 100만 달러를 벌게 된다. 이 액수는 그가 뉴욕 타임스에서 받는 돈보다 많을 것이다. 만약에 2/100가 너무 크게 설정한 수치라고 생각되면 잠시 기다려주기 바란다. 이 수치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디지털 세계에서는 누군가가 자리를 잡으면 유통업자의 부가가치는 점점 더 작아진다.

비트의 유통과 이동에는 여과와 선택 과정이 포함되어야 한다. 미디어 회사는 무엇보다도 탤런트를 스카우트하고 유통 채널은 대중 여론의 시험장을 제공한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 저자는 이런 포럼이 불필요하다. 크노프 출판사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디지털 시대에 마이클 크라이튼(Michael Crichton)은 자신의 책을 직접 팔아 이전보다 훨씬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

디지털시대에는 매스미디어의 성격이 비트를 사람들에게 밀어내는 과정으로부터 사람들(혹은 그들의 컴퓨터)이 비트를 끌어당기도록 만드는 과정으로 변할 것이다. 이것은 아주 근본적인 변화이다. 왜냐하면 미디어에 대한 우리의 전반적 개념이 연속적인 여과 행동 과정으로 바뀌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여과과정을 통해 정보와 오락물을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 혹은 '가장 잘 팔리는 책'으로 정리해 내게 되고, 이렇게 정리된 정보와 오락물은 전혀 다른 별개의 수용자들에게 전달된다. 미디어 회사가 잡지 사업처럼 내로우캐스팅(narrowcasting)이 되면서 그들은 아직도 자동차광이나 알파인 스키어, 포도주 예찬자 등 특정 이해 집단에게 밀고 들어가기도 한다. 나는 최근에 요금이 싼 심야 텔레비전 광고에서 불면증 환자를 위한 틈새(niche) 잡지를 하나 본 적이 있다.

정보 산업은 패션 산업(boutique) 이상이 될 것이다. 정보산업 시장은 전세계적인 정보고속도로이다. 고객은 인간과 컴퓨터 대리인이 될 것이다. 디지털 시장이 실재하는가? 그렇다. 그러나 인간과 컴퓨터 간의 인터페이스가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만큼 쉬워질 경우에만 디지털 시장은 열릴 것이다.


멀티미디어의 탄생

1976년 7월 3일 늦은 밤, 이스라엘 특공대는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에 잠입하였다. 그들은 독재자 이디 아민으로부터 안전한 피난처를 지원받은 친팔레스타인계 게릴라들에게 볼모로 잡혀 있던 103명의 인질을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한 시간에 걸친 작전이 끝났을 때 20∼40명의 우간다 군인과 하이제커 7명이 전부 죽었다. 반면에 이스라엘 군인 단 한 명과 인질 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여기에 크게 감동받은 미국 군부는 국방성 아르파(ARPA:th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에게 엔테베에서 이스라엘을 성공으로 이끈 훈련 방법을 미국 특공대도 사용할 수 있도록 이에 필요한 전자기술 연구를 지시했다.


이스라엘은 사막에 엔테베 공항의 실물 모형을 만들었다(이스라엘 기술자들이 두 나라가 우호적이던 시절에 그 공항을 설계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매우 손쉬운 일이었다). 특공대는 이륙과 착륙을 연습하였고 모형 지점에 대해 정확한 모의 공격을 실험하였다. '실제' 우간다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그 장소에 대한 예민한 공간감각과, 경험적 감각을 갖고 있어서 원주민처럼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간단하지만 얼마나 엄청난 아이디어인가?

그러나 그 아이디어를 실제로 필요한 모든 상황에 적용시키기는 어려웠다. 예상 가능한 모든 인질 상황이나 공항, 대사관 같은 테러리스트의 목표를 전부 다 복제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이를 실현하려면 컴퓨터가 필요했다. 다시 한번 우리는 아톰이 아닌 비트를 사용해야 했다. 그러나 비행기 시뮬레이션에서 사용되는 컴퓨터 그래픽만으로는 적절하지 않았다. 어떤 시스템으로 발전되든지간에 장소의 실제 감각을 전달하고 주변 환경을 몸으로 느끼려면 할리우드 무대 세트의 완전한 포토 리얼리즘(photorealism)이 필요했다.

나와 내 동료는 이에 대한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비디오디스크(vid-

eodiscs) 사용자가 마치 거리를 자동차로 달려 내려가는 느낌이 들도록 만드는 것이다. 테스트를 위해 우리는 플리스상 수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콜로라도의 아스펜(Aspen)을 선택했다. 그 도시는 규모면에서 조작이 용이했고 도시 구획의 모양 또한 작업에 적합했으며, 사람들도 아주 독특하여 특수제작한 촬영용 트럭이 서너 계절에 걸쳐서 몇 주 동안 거리 한가운데를 달려 내려가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이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모든 거리를 1프레임당 3피트씩 양쪽 방향에서 촬영한다. 같은 방식으로 모든 골목의 커브를 양쪽 방향에서 촬영한다. 비디오 디스크 1에는 직선도로를 촬영한 영상을 넣고 비디오 디스크 2에는 모퉁이 길을 촬영한 영상을 넣는다. 이를 이용해 우리는 완벽한 운전 경험을 얻을 수 있다. 교차점에 도달하면 디스크 플레이어 1과 2는 일렬로 일치하게 되고 당신이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돌려고 하면 그쪽 방향의 길을 보여준다. 커브를 도는 동안에는 디스크 플레이어 1이 지금까지 내려왔던 직선도로를 비추지 않게 되고, 커브를 돌고 나면 다시 작동하여 당신은 새로운 직선도로를 달려내려가기 시작한다.

1978년에 이 아스펜 프로젝트는 마술이었다. 옆 창문으로 밖을 내다볼 수 있고, 경찰서 건물 정면에서 멈춰서 그 안으로 들어가 서장과 대화를 나누고, 계절을 바꿔가며 접속해 들어가 40년 전의 빌딩을 둘러보고, 안내 관광을 한 후에 지도 위를 헬리콥터로 날아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한 시내를 한 바퀴 돈 후, 바에서 술 한잔 걸치고, 애리에드니(Ariadne)처럼 실을 남겨 처음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멀티미디어가 탄생한 것이다.

그 프로젝트는 아주 성공적이어서 테러리스트로부터 공항과 대사관을 보호하기 위해 야전 모형을 만드는 군수업자를 고용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에 선택했던 장소 가운데 하나가 테헤란이었다. 아뿔싸! 좀더 일찍 끝냈어야 했는데.

노인과 바다 - 헤밍웨이

그는 멕시코 만에서 조각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었다. 대부분은 혼자

배를 타고 나가곤 했는데,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하고 허송세월만 보낸 지 벌써 84

일째였다. 처음 40일간은 어떤 소년과 함께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마리의 고기도

낚지 못한 채 40일이 지나자 소년의 부모가 아들에게 이러는 것이었다. 그 노인은

이제 확실히 불운을 만난 것이라고. 그것도 마침내 최악의 불운인 '살라오'가 분명

하다고. 그래서 소년은 그날 이후 부모의 명령대로 다른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

갔다. 소년이 타고 나간 배는 첫 주에 제법 큼직한 고기를 세 마리나 낚았었다.

그러나 소년은 내심 노인이 날마다 빈 배로 돌아와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는 게 슬펐다. 그래서 소년은 노인이 돌아올 시간이면 바닷가에 나와 기다렸다

가 노인을 도와 사린 낚싯줄이며 갈고리며 작살과 돛대에 감긴 돛을 나르곤 했다.

돛은 밀가루 푸대로 군데군데 기워져 있었는데, 그것을 둘둘 말면 마치 영원한 패

배자의 깃대같이 보였다.

노인의 목덜미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고, 볼은 형편없이 야위었으며, 전체

적인 몰골이 너무나 초췌했다. 그 야윈 볼에는 열대지방 특유의 태양과 바다가 만

들어 준, 양성 피부암의 흔적인 갈색 반점이 있었다. 그 반점은 얼굴 양쪽으로 해

서 아래까지 쭉 번져 있었다. 손에는 큰 고기를 잡을 때 밧줄의 힘을 견디어 내느

라 생긴 깊은 상처가 훈장처럼 박혀 있었다. 그러나 그 상처는 최근에 새로 생긴

것은 아니었다. 고기 없는 사막의 썩어 문드러진 흔적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생겨

난 상처들이었다.

노인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이 다 낡고 늙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

만은 바다처럼 항상 젊고 명랑한 듯 했으며, 패배를 몰랐다.

"산티아고 할아버지."

조각배를 끌어 올려놓은 뒤 두 사람은 둑으로 같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때 소년

이 노인에게 말했다.

"실은 할아버지 하고 다시 배를 탔으면 해요. 그동안 우린 돈을 좀 벌었으니까."

노인은 소년에게 전부터 고기잡이를 가르쳐 왔었고, 그래서 소년은 노인을 무척

좋아했다.

"아니야."

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넌 이제 재수 있는 배를 탔으니까 그냥 거기 남아 있어."

"하지만 할아버지는 84일동안 고기 한 마리 못 잡았는데 우린 3주 동안 매일같

이 큰 놈을 잡은 걸 기억하시죠?"

"그럼, 알고 있지."

노인은 조용하게 대답했다.

"네가 내 실력을 의심해서 내곁을 떠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어."

"아버지 때문에 떠났던 거예요. 난 아직 어리니까 아버지 말을 들어야 했구요."

"그래, 알아."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암, 물론 그래야지."

"우리 아버지는 신념이 별로 깊지 못해요."

"그래?"

노인이 소년을 돌아보며 눈을 꿈쩍했다.

"하지만 우리는 신념이 있어. 안 그래?"

"네, 그래요."

소년은 잠시도 쉬지 않고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테라스에서 맥주를 한 잔 대접하고 싶어요. 그러고 나서 저 어구들을

집으로 나르지요."

"좋지."

노인이 즐거운 투로 말했다.

"우린 어부사인데 뭐."

5.16.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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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라지기 위해 탄생한 나라

"화폐가치와 주가 폭락, 기업의 연쇄도산, 실업 급증, 소비 정체, 대량 해고와 그에 맞선 격렬한 파업... 20세기가 저물어가던 어느 날 이런 소식이 전해져온 것은, 전통적 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던 유럽에서가 아니라, 역동적인 경제..."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미국내의 모든 연방교도소와 주립교도소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 줄로 안다. 나는 물건을 입수하는 사람이다. 항상 그렇게만 되는것은 아니지만, 고급담배나 특히 선호한다면 마리화나가 들은 권련, 자식들의 고등학교 졸업을 축하하기 위한 브랜디 등 그 밖에..."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미국내의 모든 연방교도소와 주립교도소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 줄로 안다. 나는 물건을 입수하는 사람이다. 항상 그렇게만 되는것은 아니지만, 고급담배나 특히 선호한다면 마리화나가 들은 권련, 자식들의 고등학교 졸업을 축하하기 위한 브랜디 등 그 밖에 거의 모든 것이라도 합리적인 범위에서는 가능하다.


나는 꼭 스무살 났을 때 쇼생크에 왔으며 우리의 행복한 작은 가족중에서 자신의 행위를 실토하는 몇 안되는 놈의 한명이다. 나는 살인을 했다. 세살 연상인 여편네한테 거액의 생명보험을 들어놓고 나는 장인이 결혼선물로 해준 시보레 쿠페의 브레이크에 손을 좀 봤다. 정확히 내 계획대로 진행되었지만 그러나 나는 마을로 들어가던 이웃 여자와 그녀의 어린애를 태우리라는 것은 계획하지는 않았다. 브레이크는 달아나고 차는 가속도가 붙으며 마을 공터 가의 수풀로 돌진해 들어갔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차는 50 마일이상의 속도로 남북전쟁 기념동상의 기단을 들이받고 화염에 휩싸였다고 한다.

물론 내 계획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체포되었다. 나는 한 계절이 지난 다음 이곳에 왔다. 메인주에는 사형제도가 없었다. 하지만 지방검사는 내게 세명의 죽음에 대하여 재판을 진행시켜 종신형의 세배를 언도받게 했다. 그것은 오래도록 내가 가질지도 모를 가석방의 기회를 봉쇄하는 것이었다. 판사는 나의 행위를 가증스럽고 극악무도한 범죄라고 말했으며 사실 그랬지만 한편으론 이젠 과거의 일이기도 하다. 지금도 색바랜 '캐슬락 통신' 지에서 내 사건을 찾아볼 수 있는데 거기에는 히틀러, 무솔리니, 루즈벨트 행정부 의 뉴스 다음에 내 혐의가 다소 우스꽝스럽고 고전적이라고 한 신문 표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재사회화되었는가고 묻는가? 최소한 감옥과 교도소에 관한한 나는 그 말의 뜻조차 모르겠다. 나는 그말이 정치가의 용어라고 생각한다. 그 말은 다른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먼 후일 내가 알게 될지도 모르는 말이리라.-먼 후일이라는 말은 죄수들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도록 스스로를 교육시키는 말이다. 나는 젊고 미남이었으며 마을의 빈민가쪽 출신이었다. 카빈 거리의 고풍스런 저택에사는 예쁘지만 고집세고 밝은 성격은 못되는 편인 여자하나를 나는 임신시켰다. 그녀의 아버지는 자기의 안경공장에 취직해서 열심히 일하는것을 조건으로 결혼에 동의했다. 나는 그의 진짜 속셈이 길들여지지 않아 사람을 무는 애완동물처럼 나를 집에 매어두고 지배하려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증오가 쌓이고 쌓여 이같은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었다.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그같은 일을 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것이 내가 재사회화되었다는 뜻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나에 관한 것이 아니다; 나는 앤디 듀퓨레인 이라는 사나이에 관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앤디에 대하여 말하기전에 나 자신에 관한 몇가지 설명을 해야만 되겠다. 길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나는 이곳 쇼생크 주립교도소에서 빌어먹을 40년 가까이나 물건을 입수하는 일을 해왔다. 고급 담배나 술이 항시 중요한 품목이긴 하지만 이와같은 금지품목만이 아니다. 나는 여기서 복역하는 친구들을 위해 수천개의 목록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것들은 완전히 합법적인 것이지만 처벌받고 있는 장소에서는 쉽사리 구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한 녀석이 있었는데 놈은 미성년자 강간을 포함한 여러가지 죄목으로 들어왔던 놈이었다; 나는 녀석한테 핑크빛 버몬트 대리석 세개를 구해주었는데 놈은 그걸로 멋진 조각품들을 만들어 냈다.-어린아이, 12세 가량의 소년, 턱수염의 젊은이. 이렇게. 그는 거기에 '세 모습의 예수님' 이라고 이름붙였고 그 작품들은 지금 여기 주지사를 지낸 사람의 응접실에 가 있다.

메사츄세츠 북부에서 자랐다면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를 이름이 하나 있다.-로버트 앨런 코트. 그는 1951년에 머천타일 은행을 털다가 현장을 피바다로 만들었었다. 여섯이 죽었는데 둘은 갱이었고 셋은 인질이었다. 또 한명은 고개를 잘못 들어 총알이 눈알에 박히고 만 주립 경찰관이었다. 코트는 동전 수집가였다. 이곳에서 그것을 보유하는 것이 물론 허용되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어머니와 빨래 트럭을 운전하는 중개인의 도움으로 그의 수집품을 입수해 주었다. 나는 그에게 도둑이 득실대는 이런 호텔에서 동전 콜렉션을 소지하려 하다니 제정신이냐고 말했더니 슬쩍 웃으면서 어디에다 그걸 간수할 것인지 알고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안전해. 걱정말라구. 그리고 그가 옳았다. 바비 코트는 1967년 뇌종양으로 죽었지만 그의 콜렉션은 발견되지 않았다.

나는 발렌타인 데이 때면 쵸콜릿을 구해줘왔다; 나는 성 패디 절에 맥도날드 점에서 파는 밀크 쉐이크 세통을 오 맬리라는 미친 아일랜드인에게 구입해줬다; 심지어는 돈을 갹출한 20명에게 '깊은 목구멍' 과 '존슨 양 안의 악마' 두 편의 필름을 빌려 심야상영을 해주기도 했다. 그 작은 탈선행위로 결국 열흘을 독방에서 지내야 했지만 말이다. 그것은 물건을 입수하는 사람이면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위험이다.

나는 학습 참고서나 음란 소설, 혹은 핸드 부저나 잇칭 파우다같은 새로 나온 재밌는 물건들을 구해 주었고 여러차례 장기수들에게 그의 부인이나 애인들의 팬티를 입수해 주기도 했다. 시간이 칼날처럼 질질 끄는 긴긴 밤 동안 이같은 물건들로 수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모든 물건들을 공짜고 입수해 주는 것도 아니고 또 어떤 것들은 값이 비싸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꼭 돈 때문에 이 짓을 하는 것은 아니다; 돈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캐딜락을 살 것도 아니고 2월의 두주일간 자마이카로 날아가 있을 것도 아니데 말이다. 나는 좋은 푸주한은 신선한 고기를 팔 뿐 이라는것과 같은 이유로 이 일을 한다.

나는 좋은 평판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유지하고 싶다. 내가 취급하기를 거부하는 단 두가지 물건은 총과 약물이다. 나는 누군가 자살하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돕고 싶지 않다. 내 마음속에는 평생을 복역케 할 충분한 살인이 있으니까.

그렇다. 나는 꾸준한 나이만 마르쿠스이다. 그래 앤디가 1949년 내게 와서 리타 헤이워드를 구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아무 문제 없다고 말했다.

사실 그랬다.

한국, 사라지기 위해 탄생한 나라

화폐가치와 주가 폭락, 기업의 연쇄도산, 실업 급증, 소비 정체, 대량 해고와 그에

맞선 격렬한 파업... 20세기가 저물어가던 어느 날 이런 소식이 전해져온 것은, 전통적

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던 유럽에서가 아니라, 역동적인 경제성장과 저돌적

인 무역의 상징이었던 한국이었다. 1985년 이후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을 기록

했던 까닭에 '기적의 나라'라고 불리며 모든 개발도상국가가 본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

겼던 한국도 그 거대한 폭풍은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서울에서는 '아시아의 용이

아니라 지렁이일 뿐' 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닥쳐온 위기는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

다.

몇 주 전만 해도 사람들은 흥청망청 돈을 썼으며, 기업은 수십 억 달러에 달하는 돈

을 세계 곳곳에 투자했다고 큰소리를 쳤다. 또한 정부는 북한이 파산 직전의 위기를

맞아 곧 국제무대에서 외톨이가 될 거라고 빈정대기까지 했다.

그렇게 모든 상황은 순탄하기만 한 것 같았다. 그러나 19997년 12월 초순이 되자 상

황은 돌변했고, 마침내 공황이 엄습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경제위기는 '민주주의'라는 말 자체를 금기시했던 군사정권의 억

압 속에서 국가의 발전을 꾀한다는 명분 아래 주당60시간을 노동하고도 그 대가로 쥐꼬리

만한 월급을 받으며 수십 년 동안을 희생해온 한국 국민을 너무나 맥빠지게 만들었다.

한국 국민은 1990년대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그 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

했는데, 그것은 너무도 과도한 소비성향으로 표현되고 말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모

든 것이 무너져내렸다.

일제 식민지 시절과 동족 상잔의 비극 6,25전쟁, 군사독재의 탄압 등 갖가지 역경

을 이겨낸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인은 확실히 적응력과 저항력이 뛰어난 민족이

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이렇게 맞은 위기가 불쾌할 것이다.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나 경제

적인 어려움을 경험하지 못한 채 겨울 스포츠를 즐기고 휴가 때는 외국 여행을 떠나며

고급 옷을 선호하는 그들의 고품격을 일시적으로나마 접어두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본래 무절제한 소비 끝에는 엄격한 고행이 따르는 법이다.

누구를 위하여 변화하는가

신기하게도 국제 언론은 한국의 경제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들은 한국

이 과거에 이루었던 눈부신 경제성장을 찬양하거나, 현재 한국이 처한 어려움만을 염려

할 뿐이다. 그들은 한국을 도산 직전에 처해 있는 하나의 커다란 공장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마치 4,400만 명이나 되는 한국 국민이 투표권을 가진 시민이기 이전에 견습 노

동자에 불과하다는 듯이 말이다. 1950년대에는 방글라데시보다도 더 가난했던 나라를 5

0여 년이 흐른 지금, 세계에서 열 한 번째 가는 경제대국으로 만든 눈부신 경제성장

이 사회나 가족관계, 소비성향, 종교적 관습 등과는 아무 관계없이 이루어졌으며, 결국

한국에는 정치적인 삶이나 이면적인 토론, 의견의 차이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

는 모양이다.

책상 위의 컴퓨터에서 뭘할까: 레미제라블 - 빅토르 위고 저

책상 위의 컴퓨터에서 뭘할까: 레미제라블 - 빅토르 위고 저: "1815년 샤를 프랑수아 비앵브뉘 미리엘 씨는 디뉴의 주교로 있었다. 그는 일흔다섯 살쯤 된 노인으로 가족은 누이동생과 늙은 하녀가 전부였다. 디뉴 주교관은 시 자선병원 바로 옆에 자리잡고 ..."

"단테의 신곡-지옥편"에 한하여

한 꿈의 기록이다. 교회의 첨탑이 보이고, 흑백의 영상으로 가족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한 의로


운 목사가 서글픈 설교를 한 것 같다. 곧 화면은 전환되었다. 마치 게임 '디아블로'를 연상시키듯

이 황량한 공간이 펼쳐지고 그곳은 흡혈귀의 도성, 즉 지옥이 되었다. 거기에 한 방랑하는 여인이

나타났다. 아무런 무기도 없이 방어구도 없이 그리고, 마법의 도움도 없이 그 위험한 지역을 방랑

하는 것이다. 그 여인의 슬픈 표정이 나를 끌어당겼다. 곧 그 여자는 한 가지의 비밀을 알아냈다.

그것은 정령을 소환하듯이 천사를 소환해내는 것이다. 그것은 유일한 무기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천사장 미카엘을 소환했다. 그런데, 그 천사장은 거대한 석상에 불과했다. 마치 어

떤 소설 '천사는 말이 없었다'를 연상시키듯이 그런 서글픈 현존을 제시한 것이다. 다시 화면이

전환되었다. 한 방에 한 남자가 고독하게 앉아있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바로 그 사내가 천사장

미카엘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마침 지옥의 대마왕, 마녀와의 결혼을 시도하고 있었

다. 마치 탄트라에서의 시바신과 검푸른 칼리 여신의 형상으로 곧 아름다움을 치장한 마녀가 나

타났고, 그녀는 미카엘에게 방랑하는 여인을 아느냐고 물었다. 미카엘이 대답했다.

"옛날 아내야…."

그들은 곧 성교의 자세를 취했고, 미카엘은 흡혈귀 마녀에게 '소멸수'를 건네준다. 결혼의 조건으

로, 곧 그녀가 '영생'을 상실한 대가(對價)의 평범한 여인이 되길 고대하면서 말이다. 흡혈귀 마녀

는 지껄인다.

"이럴바엔 옛날 아내에게 잘해 줄 것이지…."

다시 화면이 전환되었다. 다시 '디아블로'의 던젼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중앙은 거대한 지옥의 아

가리를 벌리고 있었고, 왼편에 순교자들을 위한 십자가들이 널려있었다. 그리고, 오르편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방랑하는 여인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두명의 친

구를 이끌고 여전히 방랑했다. 하지만, 곧 한 여자는 흡혈귀에게 물려서 전염되었고, 곧 다른 한

여자를 물어뜯었다. 방랑하는 여자와 상처를 입은 여자는 도망쳤다. 상처를 입은 여자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때 방랑하는 여인이 비감하게 말했다.

"영생을 얻으면 살 수 있고, 원한다면 고통스럽게 죽을 수도 있어? 어떻게 할거니?"

상처입은 여자는 대답했다.

"죽고 싶어…."

곧 상처입은 여인은 추한 몰골로 죽어갔다. 흡혈귀가 안되는 조건이었다. 갑자기 방랑하는 여인

은 대마왕의 동생, 즉 마녀의 남동생에게 쫓기기 시작했다. 그는 무서운 근육을 지녔고, 날카로운

이빨을 번뜩였다. 방랑하는 여인은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옛 남편,

즉 천사장 미카엘의 방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방랑하는 여인은 필사적인 심정으로 사내에게 구원

을 요청했다. 그 방 안에 사내는 고독하게 앉아있고, 문은 잠겨있었다. 하지만, 곧 그 문도 흡혈귀

에 의해 곧 부서질것처럼 위태로웠다. 여자는 간절히 갈구했다, 제발 도와달라고…. 그러자 사내,

즉 천사장 미카엘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악몽에서 깨어나라…."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그 사내는 바로 나였다.

"단테의 신곡-연옥편"에 한하여

단테- 그의 대척점은 사라졌다…. 온갖 '지리상의 발견' 이후에 사람들은 새로운 대륙을 발견했

고, 더 이상 끝없는 낭떠러지가 존재하는 바다를 상상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연옥 산의 비유

는 오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게 되었다. 혹 어떤 인간들이 '시칠리아의 연옥'을 상상하든지 아니

면 아일랜드의 '성 패트릭의 연옥'을 상상하든지 나는 그들에게 흥미를 못느낀다…. 하지만, 나는

하나의 의문을 품는다…. 유럽의 중세의 무수한 서민들이 누렸던 상상 속의 세계는 어떻게 존재

하고, 어떻게 지옥적인 한계를 겪기 시작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사도 '바오르'의 지푸라기의 비

유는 여전했고, 사람들은 사소한 악덕들을 배려해주길 고대했다. 사람들은 그 연옥을 지상에 안착

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짐짓 우리들이 쌓는 상상의 한계는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위대한 시인이 바라본 '카토', 연옥산의 문지기를 잊지 말자…. 자유를 위하여 자결한 그를 단

테는 존경했고, 그에게 위대한 자리를 주었다. 하지만, 역시 보편된 교회의 전설은 세계사의 시작

과 더불어 초라한 현존을 누리고 있었다…. 아직도 투쟁하는 교회의 '정치적'인 시도가 있어왔지

만, 사람들은 여전히 '연옥'의 존재를 잘 모른다. 그리고, 신교도들은 곧 '연옥'을 닫아버렸다…. 우

리들은 다시 이분법적인 질서에 시달리는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저승에서 더 이상 공덕을 쌓

을 수 없다면 씁쓸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이후에 이 '저승의 지리'를 다시

획득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면 사람들은 믿어줄까? 나는 단테의 이마에 일곱 번 새겨진 'P'자를

기억하고 있고, 그가 목격한 죄인들의 참회가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그 이마의 '인'을 지워주었

고, 결국엔 '지상 낙원'을 되찾은 것이다…. 어떤 사람들, 단테의 애호가들은 많은 주석들을 달았

고, 우리는 확고부동한 세상의 질서를 원했다. 하지만, 여전한 상상의 경계였다…. 그리고, 이 위

대한 미래의 한가지 '모상'을 되찾는데 인간들은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우리들은 경건하고 위대

하게 역사 속에서 개입할 '아버지'를 애타게 찾았지만, 그 분은 오랫동안 침묵에 잠겨 있었다….

그래서, 나 또한 그들처럼 하나의 비애를 안고서 산정에서 흐느끼는 마음을 가졌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인간들은….'

그때였다…. 한 중년의 사내가 등산복의 차림으로 내게 접근해왔고, 물었다.

"젊은이, 이 길이 끝입니까?"

그리고, 그 질문은 내 뇌수에서 떠난 적이 없다….

'길의 끝?'

나는 신비한 체험을 안고서 대답했다.

"이 아래쪽으로 꺾어내려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시죠…."

나는 두 번째 산정을 가리켰다…. 사내는 만족한 웃음을 지으셨다. 그리고, 나는 산을 어지럽게

날아 다니는 푸른 새들을 바라보면서 지껄였다.

'새들아, 내 어깨에 앉아줘….'

하지만, 그 새들은 냉정하게 내 동공의 한 자락을 스쳐 날아다닐 뿐이었다…. 그리고, 바람이 불

기 시작했다. 하늘로부터 작은 곤충들이 날아왔다…. 무당벌레와 어린 사마귀, 그리고 황금빛 파

리 한쌍, 그리고, 이름을 모를 유충이 한 마리 있었다…. 나는 뜻밖의 선물에 웃음을 지었다…. 그

리고, 내 청바지에 달라붙는 무당벌레가 한없이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제 한 무리의

망자들이 누렸던 '연옥'이 해방되려는 찰나가 곧 다가온 것이다…. 그들이 어디에 숨어왔고, 또 왜

'지복직관'을 누리지 못하는 슬픔을 지녀왔는지 나는 잘 몰랐다. 하지만, 산정을 내려올 무렵, 비

가 내리기 시작했고, 나는 빗속에서 거리의 여인들을 바라보면서 마음 한 구석에 담긴 말을 떠올

렸다. 내가 느끼는 감성의 한 형태를 나는 잘 알고 있었다….

5.15.2011

레미제라블 - 빅토르 위고 저

1815년 샤를 프랑수아 비앵브뉘 미리엘 씨는 디뉴의
          주교로 있었다. 그는 일흔다섯 살쯤 된 노인으로
          가족은 누이동생과 늙은 하녀가 전부였다.
            디뉴 주교관은 시 자선병원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었다.
            주교관은 아름다운 석조건물로 주교에게 당당하게
          어울리는 저택이었다. 주교 전용 거실과 응접실, 서재
          등을 비롯해 넓은 광장과 잘 가꾸어진 나무들이 있는
          정원 등 모든 것이 웅장했다. 하지만 병원은 좁고
          낮은 이층 건물로 좁아빠진 뜰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디뉴에 부임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주교는 병원을
          찾아갔다. 방문이 끝나자 그는 원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장님, 지금 환자가 몇 명이나 있습니까?"
            "스물여섯 명입니다, 각하."
            "그런데 침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더군요."
            "그렇습니다."
            "병실이 너무 비좁고 바람도 통하지 않아요."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각하."
            "원장님, 뭔가 확실히 잘못되어 있군요. 당신
          병원에는 비좁은 방 대여섯 개에 스물여섯 명의
          환자들이 들어 있는데 우리는 커다란 집에 단지 세
          명이 살고 있습니다. 이건 분명 뭔가 잘못되었군요.
          당신이 이 집에 와서 살고, 내가 당신 집에 가서
          살기로 합시다. 곧 당신 집을 비워주십시오."
            이튿날 스물여섯 명의 가난한 환자들이 주교관으로
          옮겨졌고, 주교의 가족은 병원으로 이사했다.
            주교의 생활은 청빈했다. 그에게는 재산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국가에서 받는 봉급은 세 사람의
          생활비인 천 리브르를 빼고는 모두 자선사업에 쓰고
          있었다. 동생 바티스틴 양도 거기에 철저히 따르고
          있었다. 그녀에게 디뉴의 주교는 오빠인 동시에
          주교였으며 친구이기도 했다. 누이동생과 하녀는
          오로지 그를 사랑하고 숭배했으며 그가 하는 말에
          복종하고 협력했다. 바티스틴 양의 알뜰한 살림과
          하녀의 엄격한 절약 생활 덕분에 주교는 그런 대로 살
          수 있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부자들한테는 될 수 있는 대로 돈을 많이
          거두어들였다.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모두 그의
          문을 두드렸다. 어떤 사람들은 기부하러 오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받으러 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을 도와주는 일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아무리 돈을 많이 받아도 그의 손에는 한
          푼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럴 때면 입고 있던 옷까지
          벗어주는 그였다.
            미리엘 주교의 청빈한 생활은 아주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모든 노인과 대부분의
          사상가들이 그렇듯이 그는 조금밖에 잠을 자지
          않았다. 아침에는 한 시간 동안 명상을 하고, 그
          다음에는 성당이나 자기 집 기도실에서 미사를
          드렸다. 잡다한 일과 미사를 끝내고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과 고통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위해 보냈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에는 자기
          집 뜰을 가꾸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날씨가 좋을 때면 두 시쯤 집을 나가 거리를
          산책했다. 그가 나타나는 곳은 어디고 잔치가
          벌어지는 것 같았다. 그의 모습은 사람들을 포근하게
          해주고 따스한 빛을 주었다. 어린아이와 노인들은
          마치 햇빛을 쬐는 듯한 모습으로 주교를 맞았다. 그는
          사람들을 축복하고 사람들은 그를 축복했다.
          무엇이든지 딱한 처지에 빠진 사람에게는 모두들
          주교의 집을 가르쳐주었다.
            저녁 식사는 아주 검소해서 주로 물에 데친 야채와
          수프가 식탁에 올랐다. 식사가 끝나면 그는 바티스틴
          양과 이야기를 나눈 다음 자기 방으로 가서 글을
          썼다. 그는 글쓰는 데도 소질이 있었고 학자이기도
          했다. 때로는 손에 들고 있는 책이 무엇이든 간에
          한참 읽다가 깊은 명상에 잠기기도 했다.
            집은 이층으로 되어 있었다. 두 노부인이 이층을
          쓰고 있었고 주교는 일층에서 살았다. 뜰에는
          외양간이 하나 있는데, 이곳에서는 젖소를 두 마리
          키우고 있었다. 그의 침실은 꽤 넓은 편이라서 추울
          때는 좀처럼 따뜻해지지 않았다. 디뉴에서는 장작
          값이 무척 비쌌기 때문에 그는 외양간에 판자로 칸을
          막아서 방을 하나 만들어 추운 날에는 거기서 저녁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는 나무 탁자 하나, 짚의자
          말고는 가구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식당에는 낡은
          찬장 하나만 달랑 놓여 있었다. 주교는 그와 비슷한
          모양의 찬장을 레이스로 덮어서 기도실에 갖다놓고
          제단으로 썼다. 그에게 감동을 받아 회개하게 된
          부잣집 부인들이 주교에게 새 제단을 마련해주기 위해
          몇 번 모금을 했지만 그는 그 돈을 받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져다주었다.
            "가장 훌륭한 제단은 주께 위로 받아 감사하는
          불행한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주교가 가진 사치품이라면 옛날 소지품 중에서 남은
          은그릇 여섯 벌이 있었다. 하녀는 그것이 초라한
          테이블보 위에서 반짝이는 것을 기쁜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집시의 칼_시드니셀던

짙은 안개가 밤을 재촉하고 있었다. 빅벤이  자정을 알린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안개는
템즈 강에서 계속해서 기다란 띠를 이루며  꾸역꾸역 트라팔가 광장 쪽으로 밀려들고  있었
다. 희끄무레한 안개로 뒤덮여 있는  넬슨 기념비가 마치 수의를 뒤집어쓰고  우뚝 서 있는
거대한 시체처럼 보인다.
  사라는 아까부터 차링크로스 역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어두운 보도 위를 걸어가고
있는 그 걸음걸이에서 뚜렷한 목적이 없이 배회하는 자의  심정이 엿보인다. 그녀의 걸음은
어딘지 부자연스러웠다.
  그녀의 등뒤에서는 차링크로스 역의 둥근 시계가 안개에 가려진채 어슴푸레한 불빛을  발
하고 있었다. 트라팔가 광장은 인적이 끊긴 지 오래였다. 그녀는 마침내 희미한 불빛이 비치
는 가로등에 등을 기대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모조가죽 핸드백을 열고 담배를 꺼내 입
에 물었다.
  라이터 불빛에 잠깐 비친 그녀의 얼굴은 그다지 젊지 않았다. 마흔 살 정도 되었을까? 감
정 없는 얼굴에 짙은 화장을 하고, 불룩한 젖가슴에 몸에  찰싹 달라붙는 검은색 가죽 스커
트를 입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보기에도 거리의 여자다웠다.
  요즘 매춘부들은 다들 고급 패션모델처럼 차리고 다닌다. 대부분  아직 20대인 사라의 동
료들은 절대 그런 모습으로 거리에 나서지 않는다. 고급스런 옷을 입고 나른한 걸음으로 거
리를 거닐면서 살며시 미소를 던질 뿐, 절대로 손님에게 말을 걸지 않고 조용히 그 옆을 스
치며, 자극적인 향수 냄새를 풍길 뿐이다. 그것만으로 남자가 자기를 따라올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고, 그렇게 접근해 온 남자의 팔짱을 가볍게 끼고 사라지면 그뿐이다.
  그러나 사라는 그렇지 않다. 마치  자신의 직업이 매춘부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다고나 할까. 담배를 피우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추파를 던지는
것이, 마치 먹이를 찾아 헤매는 굶주린 짐승 같다.
  나이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걸까?
  나날이 그녀가 이 사냥터에서 전리품을 가져갈 확률은 희박해지고, 손님들은 그녀의 얼굴
을 확인하곤 이내 얼굴을 찡그리며 돌아선다. 어디 그뿐인가. 노골적으로 기분 나쁜  욕설을
던지고 가버리는 녀석들도 있으니. 이래저래 사라는 마음이 편치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마약중독자인 그녀는, 단 하루도 마약 주사를 맞지  않고는 견뎌낼 수가 없다. 먹
고 살기 위해 육체를 움직이려면, 마약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저녁부터 거리를 거닐어야 하는데, 재수없는  날은 50파운드짜리 숏타임 상대
하나도 건질 수가 없다. 물론, 특별히  운수가 좋은 날이라면 200파운드짜리 올나잇  손님이
걸려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공짜는 없어. 돈을 가져와! 무엇들 해서든."
  사라의 악랄한 기둥서방, 듀크는 며칠째 그녀에게 약을 주지 않고 있다. 약만 있다면... 사
라의 입술은 약 기운이 떨어지면서 파리하게 변해갔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음주와 마약... 그
날도 사라는 싸구려 셋방에서 정오가 지나서야 눈을 뜬 뒤, 감자칩 한 봉지와 진한 커피 한
잔으로 허기를 때운 다음, 브래지어를 걸치고, 스웨터와 검은  가죽 스커트를 입고, 가죽 부
츠를 신고서, 얼굴엔 분을 바르고, 입술엔 빨간 루즈를 칠하고 거리에 나선 것이다.
  그녀는 가로등에 기대어, 또 한 대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둠이 내린 런던 시내에는  오
렌지빛 가로등만이 졸음기 어린 눈처럼 아른아른 불을 밝히고 있었다. 사라는 이 골목이 좋
았다. 이 거리는 20여 년 전, 그녀가 첫 손님을  낚은 자리이기도 했다. 그때 얼마를 받았더
라? 사라는 안개와 스모그와 니코틴이 범벅이 된 런던 공기를 들이마시며 잠깐 생각했다.
  '이 거리에 선 지도 벌써 20년째야.'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고, 자꾸만 기침이 났다. 이대로 자신의 어둑한 아파트로 돌아가  뜨
거운 오트밀이라도 한 접시 먹고 푹 잠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아침에 주인 여자가 와서 방세를 독촉했을 때, 짜증 섞인  눈길을
던지던 듀크의 무자비한 얼굴이 떠올랐다. 머뭇거리는 그녀의 얼굴에 듀크는 낡아서 반들반
들해진 가죽 스커트를 집어던지며 닦달했었다.
  "어서 나가서 당장 돈을 벌어와!"
  얼굴이 험악해진 그는 우악스럽게  그녀의 따귀를 한 대  올려붙이더니, 거칠게 코르셋을
채웠다. 그녀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듀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
렇게 해서 그녀는 이제는 너무 오래 입어서 반들반들 닳아버린, 그리고 나이에 턱없이 어울
리지도 않는 가죽 미니스커트를 입고 이 가로등 아래로 내몰린 것이다.
  그녀가 한 개비의 담배를 다 피워갈 무렵, 그녀 앞으로 두 명의 사내들이 지나갔다.  그녀
는 억지로 웃음띤 얼굴로 윙크를 하며 휴혹했다.


The Dooleys - Wanted




전세계를 3D 효과에 매료시킨 영화 " 아바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