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7.2011

노인과 바다 - 헤밍웨이

그는 멕시코 만에서 조각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었다. 대부분은 혼자

배를 타고 나가곤 했는데,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하고 허송세월만 보낸 지 벌써 84

일째였다. 처음 40일간은 어떤 소년과 함께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마리의 고기도

낚지 못한 채 40일이 지나자 소년의 부모가 아들에게 이러는 것이었다. 그 노인은

이제 확실히 불운을 만난 것이라고. 그것도 마침내 최악의 불운인 '살라오'가 분명

하다고. 그래서 소년은 그날 이후 부모의 명령대로 다른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

갔다. 소년이 타고 나간 배는 첫 주에 제법 큼직한 고기를 세 마리나 낚았었다.

그러나 소년은 내심 노인이 날마다 빈 배로 돌아와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는 게 슬펐다. 그래서 소년은 노인이 돌아올 시간이면 바닷가에 나와 기다렸다

가 노인을 도와 사린 낚싯줄이며 갈고리며 작살과 돛대에 감긴 돛을 나르곤 했다.

돛은 밀가루 푸대로 군데군데 기워져 있었는데, 그것을 둘둘 말면 마치 영원한 패

배자의 깃대같이 보였다.

노인의 목덜미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고, 볼은 형편없이 야위었으며, 전체

적인 몰골이 너무나 초췌했다. 그 야윈 볼에는 열대지방 특유의 태양과 바다가 만

들어 준, 양성 피부암의 흔적인 갈색 반점이 있었다. 그 반점은 얼굴 양쪽으로 해

서 아래까지 쭉 번져 있었다. 손에는 큰 고기를 잡을 때 밧줄의 힘을 견디어 내느

라 생긴 깊은 상처가 훈장처럼 박혀 있었다. 그러나 그 상처는 최근에 새로 생긴

것은 아니었다. 고기 없는 사막의 썩어 문드러진 흔적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생겨

난 상처들이었다.

노인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이 다 낡고 늙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

만은 바다처럼 항상 젊고 명랑한 듯 했으며, 패배를 몰랐다.

"산티아고 할아버지."

조각배를 끌어 올려놓은 뒤 두 사람은 둑으로 같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때 소년

이 노인에게 말했다.

"실은 할아버지 하고 다시 배를 탔으면 해요. 그동안 우린 돈을 좀 벌었으니까."

노인은 소년에게 전부터 고기잡이를 가르쳐 왔었고, 그래서 소년은 노인을 무척

좋아했다.

"아니야."

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넌 이제 재수 있는 배를 탔으니까 그냥 거기 남아 있어."

"하지만 할아버지는 84일동안 고기 한 마리 못 잡았는데 우린 3주 동안 매일같

이 큰 놈을 잡은 걸 기억하시죠?"

"그럼, 알고 있지."

노인은 조용하게 대답했다.

"네가 내 실력을 의심해서 내곁을 떠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어."

"아버지 때문에 떠났던 거예요. 난 아직 어리니까 아버지 말을 들어야 했구요."

"그래, 알아."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암, 물론 그래야지."

"우리 아버지는 신념이 별로 깊지 못해요."

"그래?"

노인이 소년을 돌아보며 눈을 꿈쩍했다.

"하지만 우리는 신념이 있어. 안 그래?"

"네, 그래요."

소년은 잠시도 쉬지 않고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테라스에서 맥주를 한 잔 대접하고 싶어요. 그러고 나서 저 어구들을

집으로 나르지요."

"좋지."

노인이 즐거운 투로 말했다.

"우린 어부사인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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