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7.2011

윈도우의 모양

참신한 이름짓기가 소비자에게는 잘못된 인상을 심어주지만 시장에서는 큰 돈을 버는 일이 종종 있다. 아이비엠이 개인용 컴퓨터를 피시(PC)라고 부르기로 결정한 것은 천재적인 위업이었다. 애플사가 4년이나 먼저 시장에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피시라는 이름은 개인용 컴퓨터의 대명사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차세대 운영체제의 이름을 윈도우라고 이름지음으로써, 애플이 윈도우 분야에서 5년이나 앞서 있었고 수많은 워크스테이션 제조업자가 이미 광범하게 윈도우를 사용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용어를 영원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윈도우는 컴퓨터 스크린이 작기 때문에 필요하다. 윈도우를 쓰면 상대적으로 협소한 작업 공간에서 서로 다른 처리과정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이 책 전체는 출판사가 만든 부분이나 출판사를 위한 부분을 제외하면 종이 없이 9인치짜리 스크린으로 집필되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윈도우 사용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어떻게 하는가를 배울 필요 없이 그냥 하면 된다.

윈도우는 텔레비전의 미래에 대한 은유로서도 흥미롭다. 특히 미국인들은 텔레비전 영상이 스크린을 꽉 채워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모든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동일한 직사각형 형태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스크린을 꽉 채우는 데는 비용이 든다.

실제로 1950년대 초기의 영화 산업은 초창기 텔레비전 보급을 저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와이드 스크린(시네라마, 슈퍼 파나비전, 슈퍼 테크니라마, 35밀리 파나비전 그리고 아직까지 사용되고 있는 시네마스코프 등)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현재 텔레비전에서 사용되는 4대3 비율은 2차대전 이전에 만들어진 영화의 가로 세로 비율을 본뜬 것이다. 이것은 시네마스코프, 곧 지난 40년 동안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영화 형태에는 맞지 않는다.

유럽의 방송사들은 이른바 레터 박스(letter boxing)를 사용하여 이러한 화면 비율의 차이를 해결하였다. 그들은 텔레비전 스크린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검게 만들어 나머지 사용 영역이 정확한 화면 비율을 갖도록 하였다. 몇 개의 픽셀을 희생함으로써 시청자는 각 프레임의 모습이 충실하게 재현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나는 레터 박스의 효과를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없을 경우 영상의 상하 수평선은 텔레비전 수상기의 둥그런 플라스틱 테두리 때문에 두리뭉실해질 것이다.

미국에서는 레터 박스 방식을 거의 쓰지 않는다. 대신에 필름을 비디오로 옮길 때 와이드 화면 영화를 가로 세로 4대3의 직사각형 틀에 짜넣는 '팬 스캔'(pan-and-scan) 방식을 사용한다. 단순히 그림을 짜넣는 것은 아니다(제목과 크레디트 credits 자막이 뜰 때는 그렇지만). 필름이 기계(플라잉 스포트 스캐너 flying spot scanner)를 거치는 동안 그 위에 덧씌워진 4대3 윈도우를 사람이 수동으로 움직여 각 장면에서 가장 적절한 부분을 잡아낸다.

우디 알렌(Woody Allen) 같은 감독은 이런 작업을 용납하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감독은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이러한 팬 스캔이 대책 없이 실패한 예를 영화 [졸업](The Graduate)에서 볼 수 있다. 더스틴 호프만(Dustin Hoffman)과 앤 밴크로프트(Anne Bancroft)가 화면 양 끝에서 각자 옷을 벗는 장면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비디오 한 프레임에 그들 둘을 동시에 집어넣을 수는 없었다.

일본과 유럽에서는 새로운 와이드 화면비 16대9를 대세로 몰아가고 있고, 미국의 고선명 텔레비전 경쟁자들은 조심스럽게 이를 따르고 있다. 16대9 화면 비율은 실제로 4대3보다 더 나쁜 결과를 낳는다. 왜냐하면 4대3 비율로 만들어진 기존의 비디오 자료를 보기 위해 16대9 스크린의 양쪽 가장자리에 이른바 검정 커튼을 치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커튼은 시각적으로 레터 박스에 못미칠 뿐만 아니라 필요할 때 팬 스캔을 할 수도 없다.

화면 비율은 가변적이어야 한다. 텔레비전이 충분한 픽셀을 갖는다면 윈도우 스타일은 굉장한 의미를 만들어낼 것이다. 10피트 영화 스크린의 경험과 18인치 텔레비전 화면의 경험이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미래의 어느 날, 바닥에서 천정에 이르는 고선명 디스플레이가 등장할 경우 당신은 텔레비전 이미지를―작은 스크린 주위의 프레임같이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방안에 화분들을 위치시키듯이―스크린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 전체 벽에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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