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7.2011

그래픽 빅뱅

엠아이티의 이반 서더랜드(Ivan Sutherland)는 대화형(interactive) 컴퓨터 그래픽의 세계에 관해 연구했는데, 1963년에 발표된 그의 박사 논문 [스케치패드](Sketchpad)는 전세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스케치패드는 사용자가 '광학펜'으로 컴퓨터 스크린과 직접 상호작용할 수 있는 실시간 선그리기 시스템(real-time line-drawing system)이었다. 그가 이룬 성과는 너무나 방대해서 우리 가운데 몇 명이 달려들어도 모든 내용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데 10년은 족히 걸릴 만했다. 스케치패드는 여러 가지 새로운 개념을 소개하였다. 그 가운데 몇 개를 꼽아보면 동적 그래픽(dynamic graphics), 비쥬얼 시뮬레이션(visual simula-


tion), 압축 해상법(constraint resolution), 펜 추적(pen tracking), 좌표계(virtually in-

finite coordinate system) 등이 있다. 스케치패드는 컴퓨터 그래픽의 빅 뱅(big bang)이었다.

그후 10년 동안 연구자들은 컴퓨터 그래픽의 실시간 상호작용에 대해 흥미를 잃는 듯했다. 대신 오프라인(off-line)으로 사실적인 이미지를 합성하는데 그들의 창조적인 에너지를 쏟았다. 서더랜드 자신은 컴퓨터 이미지를 실제 사진처럼 정교하게 만드는 비쥬얼 실재(visual verisimilitude) 문제로 약간 우회하였다. 그림자(shadows), 색조(shading), 반사(reflections), 굴절(refractions), 잠복 표면(hidden surfaces) 등이 그의 연구 초점이었다. 아름답게 그려진 장기 말과 찻주전자가 스케치패드 다음 시대의 우상이 되었다.

이 시기에 나는 그래픽 아이디어를 쉽게 표현하는 일이 그래픽을 합성 사진처럼 그려내는(to render) 기계의 성능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훌륭한 인간-컴퓨터 인터페이스 디자인은 복잡한 묘사에서 볼 수 있는 완벽성과 일관성보다는 어떤 디자인 과정에서나 초기 단계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곧 컴퓨터에 대한 불완전한 사고와 애매한 사고를 지니고 있었다. 손으로 그린 스케치를 온라인, 실시간(real-time)으로 추적하는 일은 나에게 훌륭한 연구 과제를 제공해 주었다. 이 작업을 통해 나는 컴퓨터 그래픽이 동적이고 상호작용적이며 표현에 강한 매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 작업의 핵심 개념은 한 사람의 그래픽 '의도'(intent)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사용자가 완만한 곡선을 천천히 그었을 때 컴퓨터는 그의 의도를 안다. 그러나 똑같은 형태의 선이라도 빠르게 그어진 것이라면 사용자는 원래 직선을 그으려 했을 것이다.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 놓고 본다면 두 개의 곡선은 거의 똑같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의도는 완전히 다르다. 스케치하는 행위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므로 컴퓨터는 각 사용자의 스타일을 배워야 한다. 30년 후, 애플이 만든 개인 휴대용 통신 단말기인 뉴턴(Newton)에 의해 이와 같은 개념이 재현되었다. 성능에 약간의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뉴턴은 사용자의 필체를 파악해서 손으로 쓴 글씨를 인식할 수 있었다.

스케치한 모양이나 대상을 인식하는 것을 보고 컴퓨터 그래픽에 관한 나의 생각은 선에서 점으로 바뀌었다. 스케치에서는 선 사이에 있거나 선으로 보완된 부분이, 그 그림이 무엇을 그린 것인가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같은 기간에 제록스의 팔로알토 연구소(PARC)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에 대한 형태지향적(shape-oriented) 접근방식을 창안해냈다. 이 접근 방법에서는 무수한 점의 집합으로 이미지를 저장하고 보여줌으로써 무정형의 영역을 다루었다. 그 당시 몇 명의 동료가 미래의 대화형 컴퓨터 그래픽은 스케치패드와 같이 선을 긋는 장치가 아니라 텔레비전과 유사한 래스터 스캔(raster scan) 시스템이 되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시스템은 브라운관(CRT)의 빔을 엑스(X), 와이(Y)축에다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컴퓨터 메모리에 저장된 이미지를 디스플레이 장치 위에 그려내는데, 이 과정은 마치 그림을 새겨넣는 것과 흡사하다. 한때 선으로 인식되었던 컴퓨터 그래픽의 기본적 요소는 이제 픽셀로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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